오늘자 신문에서 중국에서 발견된 고구려비에 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.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지금의 지린선 지안시 에서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요.
중국 지린성 지안시 마셴향 마셴촌에서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압축한 듯한 내용을 새긴 고구려 비석(사진)이 발견됐다. 광개토대왕비,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고구려비로 등록된 이 금석문을 국내 학계는 "고고학적 대발견"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. 특히 이번에 발견된 비석은 광개토대왕비처럼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은 이른바 수묘비(守墓碑)로 평가된다... -연합뉴스-
고구려비가 지니는 의미는 꾀나 크다고 할 수있는데요.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총 3개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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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개토대왕릉비 |
광개토왕릉비(廣開土王陵碑)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능비이다. 414년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으며, 응회암(凝灰岩) 재질로 높이가 약 6.39미터, 면의 너비는 1.38~2.00m이고, 측면은 1.35m~1.46m지만 고르지 않다. 대석은 3.35×2.7m 이다.네 면에 걸쳐 1,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.[1]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.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,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(史料)가 된다. 또한 전한(前漢) 예서(隸書)의 서풍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.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확인된 적은 없었다. 그러다가 청의 만주에 대한 봉금제도가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. - Wikipedia -
이번 발견은 광개토왕릉비에 이어서 지린성 에서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옛 발자취가 발견된 것이네요.
그리고, 또 하나 발견된 국내의 고구려 비문 충주 고구려비 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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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주고구려비 국보 제205호 |
충주 고구려비(忠州 高句麗碑), 또는 중원 고구려비(中原 高句麗碑)는 5세기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민국 유일의 고구려비로 높이는 203cm, 폭은 55cm이다. 만들어진 시기에 관해선 5세기 전반 광개토왕 때 만들어졌다는 학설부터 6세기 평원왕 때 만들어 졌다는 학설까지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449년 장수왕 때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. 고구려시절 원 이름은 국원성(國原城)이었으나, 신라가 이곳을 빼앗은 뒤 중원경으로 삼아 중원 고구려비라고도 한다.
비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79년 4월로 발견 당시에도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많은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. 형태는 넓적한 돌기둥처럼 보이며 자연석을 그대로 비석으로 활용하고 있다. 높이 135cm·폭 56cm·두께 33cm인 화강암의 사면에 예서체 글씨가 1행 23자꼴로 528자 새겨져 있다.[1]마모가 심해 비문의 내용은 알아 볼 수 없지만 신라토내당주(新羅土內幢主)라는 표현을 통해 충주 고구려비를 만들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했으며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. 또한 신라를 이(夷)라고 칭하는 부분에서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충주에 고구려비가 세워진 것을 통해 고구려의 남쪽 국경이 중원(현재의 충주)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.
역사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지만, 인간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때, 비로서 겸허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. 이번 발견으로 우리 민족의 옛 역사를 보다 정확하게,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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